가끔은 책의 내용보다 제목이 먼저 마음에 남습니다.


천선란 작가의 소설집
『어떤 물질의 사랑』이 그랬어요.


어떤 물질.
그리고 사랑.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두 단어가
한 문장 안에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이 오래 마음에 걸렸습니다.

 

사랑은 보통 마음에 가까운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도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입자들로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

 

말투, 기억, 습관, 기다림,
자주 떠올리는 얼굴,
문득 생각나는 문장,
같이 걷던 길의 온도 같은 것들로요.

 

천선란 작가의 『어떤 물질의 사랑』은 SF 소설집입니다.

SF라고 하면 먼저 우주, 과학, 미래, 기술 같은 단어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남는 것은

가장 인간적인 감정들이에요.

 

외로움.
상실.
기억.
그리고 사랑.

어쩌면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감정들은
낯선 세계를 통과할 때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집니다.

익숙한 현실 안에서는 너무 당연하게 지나쳤던 마음들이
조금 다른 존재의 입을 빌리거나,
조금 다른 세계의 규칙 안에 놓이면
갑자기 다시 보이기 시작하니까요.

 

책을 읽는 동안 그런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이건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 같으면서도,
결국 지금 내 마음의 이야기 같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요.

 

사랑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오히려 잘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마음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설명하는 일은 늘 어렵습니다.

특히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한 번의 고백으로만 만들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대신 아주 작은 장면들이 천천히 쌓입니다.

그 사람이 자주 쓰던 말.
나를 부르던 목소리.
같이 먹었던 음식.
그리고 나중에야 알게 되는 다정함.


그런 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남아 있다가
문득 다시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사랑은 감정이라기보다
하나의 흔적에 가까운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떤 물질의 사랑』이 오래 남았던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이 물질이라면,
그것은 단단한 돌이나 금속 같은 것은 아닐 겁니다.


오히려 아주 가볍고 희미한 것에 가까울 것 같아요.


손에 쥐려고 하면 흩어지지만,
분명히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떤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는 것.

 

책을 읽고 난 밤,
책상 위에 책을 덮어두고 한동안 표지를 바라봤습니다.

 

어떤 물질의 사랑.

그 문장은 질문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답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고백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기억합니다.

 

누군가는 문장으로,
누군가는 사진으로,
누군가는 계절로,
누군가는 다시는 가지 않는 장소로.

 

사랑이 남긴 물질이 있다면
아마 그런 것들일지도요.


천선란 작가의 소설은
낯선 세계를 보여주면서도 결국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질문을 남깁니다.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잃고,
무엇을 기억하며 살아가는가.

그리고 사랑은 정말 완전히 사라지는가.

 

 『어떤 물질의 사랑』을 읽고 난 뒤에는
사랑이 아주 작은 물질처럼
지금의 마음 어딘가에 조용히 남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