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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득 제주도가 떠올랐습니다.
한 번 떠올리고 나니,
20대의 제주도가 생각보다 선명하게 남아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는 20대 때 제주도를 꽤 자주 갔습니다.
1년에 한두 번 정도는 제주에 갔던 것 같아요.
그때는 왜 그렇게 제주를 자주 찾았는지 잘 몰랐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아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조금 멀어졌다는 감각.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장소.
무언가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제주는 저에게 그런 곳이었습니다.
바다를 보고 금방 숙소로 돌아와도 괜찮았고,
하루 종일 큰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그게 그 시절의 저에게는 꽤 필요했던 것 같아요.
제주에 관한 기억 중 하나는 태풍이 오던 날입니다.
그때 제주에 갔지만,
태풍 때문에 이틀 정도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러야 했어요.
원래는 여기저기 다닐 생각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비바람이 강해서 밖으로 나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근처에는 식당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했는데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김치볶음밥을 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참 따뜻했던 식사였어요.
창밖에서는 비가 옆으로 날렸고,
바람이 문과 창문을 계속 흔들었습니다.
여행은 멈춰 있었고, 일정은 하나씩 지워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간이 싫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었어요.
갈 곳이 없어서 머물렀고,
머물렀기 때문에 보이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게스트하우스에는 저처럼 발이 묶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고,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거의 없었던 사람들.
어디서 왔어요.
제주에는 왜 왔어요.
원래는 어디 가려고 했어요.
태풍이 지나가면 어디로 갈 거예요.
대화는 그런 식으로 시작됐던 것 같습니다.
서로를 잘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할 수 있는 말들이 있습니다.
다시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사람을 조금 솔직하게 만들기도 하고요.
태풍은 이틀쯤 지나서야 잦아들었습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을 때,
거리는 아직 젖어 있었고 바람에는 물기가 남아 있었어요.
이상하게 그때의 제주가 더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그때의 저는 아마 조금 지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잘 해내야 한다는 마음도,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해야 한다는 조급함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태풍 때문에 멈춰버린 제주에서,
그런 마음들이 잠시 조용해졌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해도 괜찮은 시간이었고,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절의 제주가 제게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무언가를 해결해주지는 않았지만, 잠깐은 괜찮다고 말해주는 곳.
그래서 그때의 제주도는 조용히 위로받았던 기억에 가깝게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