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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중순의 공기라기엔 뜨거운 열기가 계속되고,
창밖으로 보이는 초록은 하루가 다르게 짙어집니다.
이맘때면 달력의 날짜보다 먼저
머릿속을 스치는 얼굴들이 있어요.
삐걱거리던 교실 바닥 소리나
복도 끝에서 들려오던 낮은 목소리 같은 것들이
함께 떠오르곤 합니다.
스승의 날이 지나고 있습니다.
요즘은 모르는 게 생기면
손안의 화면을 몇 번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지식을 찾아낼 수 있죠.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여전히
사람에게서 길을 찾고 싶어 합니다.
이런 날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굿 윌 헌팅이에요.
영화는 천재적인 수학 재능을 가졌지만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린 청년 윌 헌팅과,
그의 상처를 묵묵히 들여다보는 심리학자 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윌은 누구보다 명석하지만
정작 자기 삶은 믿지 못해요.
누군가에게 기대받는 일도,
사랑받는 일도
그에게는 위협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숀은 그런 윌에게 정답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억지로 인생의 궤도를 수정하려 들지도 않죠.
그저 윌이 스스로를 온전히 마주할 수 있을 때까지
그 옆을 지킵니다.
영화 속에서 숀이 건네는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짧은 한마디가
그토록 묵직하게 다가오는 건,
그 말이 기술적인 조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존재를 향한 깊은 긍정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저에게도 숀 같은 존재로 기억되는 어른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에요.
당시 저는 하고 싶은 일도,
특별한 재능도 없는
참 애매한 학생이었습니다.
성적도 그저 그랬죠.
그러다 첫 중간고사에서
운 좋게 기대보다 나은 성적을 받았는데,
선생님은 그 결과를 본인 일처럼 기뻐해 주셨습니다.
누군가 나를 믿어준다는 감각은
생각보다 힘이 세더군요.
그 믿음을 망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 하나로
꽤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기억에 더 깊게 남은 건
뜻밖에도 제가 저지른
아주 어설픈 거짓말 때문이었습니다.
정확히 어떤 사건이었는지는 희미해졌지만,
금방 들통날 게 뻔한
유치하고 비겁한 거짓말이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선생님은 제 거짓말을 알아차렸음에도
크게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지 않았습니다.
길게 훈계하는 법도 없었죠.
대신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보이던
그 실망 섞인 얼굴과 서늘한 침묵이
혼나는 것보다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나를 믿어주던 사람의 믿음을
내 손으로 직접 깨뜨렸다는 감각이
뒤늦게 밀려왔습니다.
그 침묵은 저에게
거울 같은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화를 내는 대신
제가 제 비겁함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들었습니다.
좋은 선생님은
단순히 좋은 말만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나를 속이고 있을 때
조용히 멈춰 세워주는 사람이라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스승의 날이라고 해서
거창한 감사나 대단한 교훈을
떠올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오래된 교실의 풍경,
잘못을 들킨 뒤의 길었던 침묵,
그리고 나보다 나를 조금 더 믿어주던
어른의 표정 같은 것들을 가만히 복기해 봅니다.
지식은 검색으로 채울 수 있지만,
나를 다시 보게 만들던 그 단단한 시선은
오직 사람만이 줄 수 있는 것이니까요.